데스노트
[글: 오바 츠구미, 그림: 오바타 타케시]
칼 마르크스는 그의 책에서 “당신의 ‘존재’가 희미하면 희미할수록,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적게 표현하면 표현 할수록, 당신은 그만큼 더 ‘소유’하게 되고, 당신의 생명은 그만큼 더 소외된다.”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회피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답이 없는 질문들은 사춘기 때 자아정체성 확립이라는 명목으로 표면적인 정리가 끝난 듯 해 보이지만 그것조차 제 때,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또한 인간이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고 그 소유에 몰두할수록 어떤 것이 정의이며 생명인지를 잃어가게 된다. 나 역시 잊고 지내던 정의 실현의 방법론적 타당성이나 소유에 몰두한 삶에 대해 얼마 전 접하게 된 데스노트라는 만화 속 두 인물을 보며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데스노트는 오바 츠구미 글, 오바타 타케시 그림의 총 12권으로 구성된 만화책이다. 2004년 일본에서 첫 단행본을 출간하였고 올해 2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일본과 한국 외 홍콩, 대만 등의 아시아 전역에서 제작비의 4배인 800억을 벌어들이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하였다. 데스노트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사신계에 따분함을 느낀 사신 류크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데스노트를 인간계에 떨어뜨린다. 그 노트는 일본의 한 천재 소년 라이토의 손에 들어간다. 라이토는 이 노트를 이용해서 범죄자들을 죽이고 이상적 사회를 만드는 것을 꿈꾼다. 이에 명탐정 L은 그런 라이토를 막으려고 한다는 서로 다른 정의를 내세운 두 명의 천재의 두뇌싸움을 그린 만화 이다.
라이토는 범죄 없는 이상세계를 만든다는 명목아래 수많은 범죄자들을 죽음으로 심판한다. 그리고 그 세계의 신이 되는 것은 자신 밖에 없다고 늘 스스로 되새긴다. 또한 작가는 실재 데스노트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을 때 그들이 그것을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쓰는 것을 보여주며 라이토의 심판이 법과 윤리를 떠나 인간의 기본적 소양 안에서 옹호를 받을 만한 여지를 충분히 지닌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데스노트를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하나의 논란이다. 과연 정당한 절차를 벗어난 행위가 결과만을 통해 우리의 동감 살 수 있는가, 없는가의 윤리적 판단이 이 만화의 전반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행위는 고대사회로부터 내려온 사회적 규칙에 의해 실행되는 하나의 행위임에 틀림없다. 법과 규칙이라는 언약적인 사회적 과정을 통해 인증되지 않는 응징은 과연 합당한 정의인가라는 논란은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옳고 그름의 양분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작가는 서로 다른 이 두 가지 가치 견해를 모두 지지하며 여러 주변 인물들을 통해 밝히고 있다. 또 하나 이 작품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것이 단순히 논란의 여지가 되는 산물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 형태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전계의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의 정의에 갖힌 라이토는 자아를 잃고 자신의 이상에 반하는 세력을 거의 파괴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 파괴로 인해 라이토는 마음의 완전함을 느껴야 하지만 불안과 고립감을 더 키우게 되며 결국 노트에 의존한 자아만이 커져가며 자신의 쫒는 세력을 파괴하는데에만 광적으로 집착한다. 결말에서 작가는 표면적으로는 라이토를 죽임으로써 라이토의 정의실현 방법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드려다 보면 실현 방법 자체의 가치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 둔 체로 에리히 프롬이 언급한 권위주의로 도피에 의한 라이토의 자아 소멸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정리하면, 노트의 절대적 권한에 의존하여 자신의 자아를 그 권한에 융합시키고 소멸한 라이토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선행된 가치판단에 의존해 자신의 의지를 맡기는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이 만화 처음부터 끝까지 제기하고 있는 문제, 비윤리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 낸 이상세계의 옳고 그름의 판단, 조차 우리는 스스로의 견해를 배재하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실제로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암시된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정의를 지지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