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레너드 믈로디노프]
최근에 박사학위 디펜스를 마쳤다. 몇몇 교수님들이 연구 내용에 대해서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주셨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뭔가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4년 동안의 결실로 그럴싸해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 내긴 했는데, 사실 내 연구가 어디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솔직히, 열심히 똥을 만들어낸 기분이었다. 디펜스를 마치고 맞이한 첫 주말에, 유학을 시작하기 전에 읽었던 이 책이 생각났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 이 책은 저자인 레너드 믈로디노프가 박사학위를 마치고 막 독립연구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시기에 그의 고민과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리처드 파인만과 나눈 대화들을 담은 책이다. 인터넷 리뷰를 보면,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는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는 파인만의 말에 큰 무게를 두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저자가 만든 자기 삶의 경계? 가 좋았다. 예를 들어 아래 두 구절은 자기 삶을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적어도 어떤 방향으로는 향하지 않겠다. 라는 경계를 만든 것으로 생각한다. 삶의 목표를 정확히 세우는 것은 그 목표를 위해서 어떤 행위도 허용되어야 할 것 같지만 경계를 쳐서 폭을 좁히는 것이 더 넓은 자신을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별 쓸모없는 물건들을 집안에 잔뜩 쌓아놓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아주 긴 시간을 시달리다가 수십년 뒤 허비한 세월을 후회하는 어른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보다는 나은 삶을 살겠다고 맹세하고 있었다. 최고의 자산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몇 년 후면 나도 완전히 끝장이 나고 나의 이웃처럼 방위산업체에서 우울한 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내가 미사일을 설계하는 모습은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 미사일을 누구한테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럴수가 없었다."
나는 사실 파인만 아저씨를 잘 모른다. 이름은 많이 들어봤고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책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가 물리학자로서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물리학자로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인류의 철학적 고민에 답을 가지고 있는 스승처럼 바라보는 것은 싫다. 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파인만의 말이 그가 연구자로서 가지고 있는 어떤 태도를 보여주고, 개인적으로는 그것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글쎄, 나는 나 자신말고는 다른 사람들한테 뭐가 좋은지 잘 몰라서 말이야."
자기 자신의 기준에서 남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다. 물리학자가 위대하다고 생각하거나 학문에 서열을 두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 가운데 한 특정한 종류를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하는 것뿐일쎄!...... 과학자에게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일을 아주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에 오랜세월동안 한정된 주제 위에 많은 경험이 쌓이게 되었다는 것뿐일세…...나와는 달리 같은 무제를 매일 생각하지 않아. 오직 나같은 천치만 그렇게 한다네..."
나 자신이 남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다른 사람 말고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것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내가 더 열렬히 고민하기 때문에 높은 가능성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 연구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큰 가정인 것 같다.
"내가 택하는 방법을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상관없네. 나는 나 자신을 속여서 나에게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을 하지."
"내 말은 그저, 자네가 뭘 택하든 간에 스스로 가장 악질적인 비판자가 되라는 말일세. 또 엉뚱한 이유때문에 그 일을 하지는 말라는 걸세. 자네 자신이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면 하지 말게. 뜻대로 안 되면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 되니까"
"원숭이가 할 수 있다면 자네도 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원숭이가 아니었다. 나는 결과가 어떻게 될지 걱정했지만 원숭이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이 나이가 들면서 배우게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생각만큼 복잡하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데 이제는 답을 찾은 것 같구먼, 자네가 물리학을 좋아하는 것은 자네가 열심히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창의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문제 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지."
"그것은 자기 만족이었다. 파인만의 초점은 내부에 있었다. 그는 내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유를 얻었다"
나도 내 내부에 초점을 맞춰 스스로 만족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 내가 지켜야 할 경계들을 잘 세우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연구해 나가고 싶다. 어떤 문제를 풀까도 굉장히 중요한데,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박사학위 연구를 시작할 때처럼 "엉뚱한 이유" 때문에 어떤 연구 주제를 선택하지 않으면 한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박사학위 연구 주제는, 빨리 졸업해야 한다는 강박에 내가 빨리할 수 있는 어떤 주제를 택했다. 그러고 나니 다 끝내고 나서 남들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허무하고 학위를 받기 위해서 연구했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 엉뚱한 이유로 낭비하기에는 아까운 인생이지 않나.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흥미로운 문제를 찾아서 스스로가 만족할 때까지 풀어보자! 그럼 내 삶도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