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요즘, 유학을 시작할 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그때의 내게 영향을 끼쳤던 글들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살펴보고 싶다.
이 책은 가족, 사회, 국가, 종교로부터 독립해야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나와 가족, 사회 국가, 종교와의 관계를 '동물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 관계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교육으로 주입된 어떤 옳고 그름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날 것 그대로를 바라보았다. 사실, 종교나 국가, 혹은 사회로부터의 독립은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은 꽤 많은 사람에게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 1장의 제목인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는 제목부터가 한국에서 오랫동안 받아온 유교 교육에 반하는 문장임과 더불어 '버려라.'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가족과 부모를 떠나야 한다. 라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었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내가 유학을 시작한 나이는 34세, 그 나이쯤 되면 보통은 다른 가정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한다. (이것 또한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는 완벽한 독립은 아니지만, 부모와 심리적인 거리를 늘릴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내 가정을 일구지도 않았고 30년은 넘게 한국에 살면서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주입된 가족과 부모에 대한 이상한 연민과 믿음으로 가족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하지 못한 상태였었다. 따로 살긴 했지만 그런 물리적 독립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완벽한 가정에 대한 허상이 나를 얼마나 괴롭히고 있는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고 가족으로부터 완벽하게 독립하는 것이 힘들지만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살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깨달았다. 이 책은 그 생각을 더 굳건히 해 주었던 것 같다. 지금 나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떨어졌다.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부모에게 기대는 순간, 내 삶은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잔소리하지 말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없고, 내 인생의 결정을 허락받아야 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또 나에게 거는 부모의 기대와 희생으로 그들의 인생 또한 불행해진다. 이것을 평생 기억하며 살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또 하나 크게 공감이 갔던 것은 대학 학위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다. "단순히 사회적 값어치를 매기는 데 목적이 있는 학력을 그렇게나 중시하는 까닭은 오로지 순종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세상의 가치관에 어디까지 순종적일 수 있는지, 그 어처구니없는 입시 전쟁에 얼마나 투신한 인간인지를 판단하고 싶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이런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다. 직장에서 만난 대부분 사람은 사회가 매긴 어떤 값어치에서 남들보다 뛰어나게 되는 것을 지향한다. 회사가 정한 뭔지도 모르는 이상 기준으로 평가받아서, 승진이라 불리는,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르고 직함 하나 바뀌는 것을 하지 못하면 패배자라는 기분에 둘러싸이게 된다. 이런 제도에 잘 적응해서 남보다 뛰어난 자가 되고자 승진에 욕심부리는 인간들은 대부분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다. 게네들은 쭉 그런 식으로 자신을 증명하면서 살았고 그런 시스템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는 학력 좋은 사람을 뽑는다. 회사 인사과에서는 이런 것을 이용하기 위해서 직급을 더 쪼개서 승진하는 기분은 느끼게 해준다. 그러면 회사에 충성하며 살 테니까, 회사는 직원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지…
국가라는 테두리도 애국심이라는 말도 안 되는 관념을 교육으로 세뇌해서 실체도 없는 무언가에 충성하게 만든다. 사실은 국가라는 것은 없고 그 안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부여한 그 권력은 국민의 평안함 삶을 위해서 serve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 권력을 지닌 자들은 국민들 위에 군림하고 자신의 지위를 뽐낸다. 애국하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사실 잘 살펴보면 실체가 없는 국가 대신에 그 안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중공업에 다닐 때 우수사원에 뽑혀서 어떤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그 교육의 핵심은 자동차 철강 조선업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너희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라는 내용이었다. 대한민국은 무엇이며 내가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회사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을 모아도 서울에 적당한 집 한 채 사기도 어려운, 그런 가치의 돈을 주면서 너희가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이다. 라는 허상의 자부심을 심어주고 내 인생을 받아 갔다. 국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 실체를 잘 봐야 한다. 그 희생에 이득을 얻는 자들이 누구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 죽기 전까지 독립된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나기 위해서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나 자신을 브랜딩해서 먹고 살되, 대중의 사랑을 받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어떤 것을 제공하는 자로 살고 싶다. 박사과정이 끝나는 이 시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으며, 한 번 더 내 삶의 방향을 바로 잡았다. 앞으로 잘해보자!